뉴스를 보다 보면 법원 판결 소식이 자주 들려옵니다. “A씨의 청구를 기각한다”, “B사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C씨의 소송은 각하되었다”… 분명 우리말로 된 소식인데, 무슨 뜻인지 정확히 와닿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한 적 없으신가요? 특히 직접 소송을 준비하거나 법적 다툼에 휘말렸다면 이 용어들은 더욱 거대한 벽처럼 느껴질 겁니다. 법률 용어가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막막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제기한 소송이, 혹은 내가 받은 판결이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몰라 답답했던 그 마음, 충분히 공감합니다.
핵심만 정리한 기각, 인용, 각하의 차이
- 각하: 소송의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원이 내용 자체를 아예 판단하지 않고 재판 절차를 종료시키는 결정입니다.
- 기각: 법원이 소송의 내용을 심리한 결과, 원고의 주장이나 신청에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배척하는 판결입니다.
- 인용: 법원이 소송의 내용을 심리한 결과, 원고의 주장이나 신청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판결입니다.
각하 문이 닫히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
법원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돌려보내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이것이 바로 ‘각하’입니다. 각하는 소송이나 신청이 형식적인 요건, 즉 ‘소송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때 내려지는 결정입니다. 재판부가 본안, 즉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심리를 하기도 전에 절차를 끝내버리는 것이죠. 따라서 각하 결정은 원고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전혀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각하될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끝난 재판에 대해 다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소송을 제기할 법적 이익(소의 이익)이 없는 경우, 또는 원고나 피고가 될 자격(당사자 적격)이 없는 사람이 소송을 낸 경우 등이 있습니다. 또한, 법에서 정한 제소기간을 놓치고 뒤늦게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도 문전박대를 당할 수 있습니다. 행정소송에서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제소기간 규정입니다. 이처럼 각하는 소송의 내용이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 즉 형식적 요건 미비를 이유로 소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각하 결정을 피하려면
소송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와 같은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소송 요건을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제기하려는 소송이 법에서 정한 형식과 절차에 맞는지, 필요한 서류는 모두 갖추었는지, 제소기간은 준수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각하’ 결정을 받았다면, 이는 패소와는 다른 개념이므로 요건을 보완하여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복 절차를 통해 항소나 상고를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꼼꼼한 준비로 각하를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각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이제 법원이 문을 열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상황입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양측의 주장과 증거를 신중하게 살폈습니다. 이것을 ‘본안 심리’라고 합니다. 오랜 심리 끝에 재판부가 당신의 주장에 ‘이유 없음’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 이것이 바로 ‘기각’입니다. 즉, 기각은 소송의 형식적 요건은 통과했지만, 내용(실체)을 심리해 본 결과 청구인의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거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민사소송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돈을 갚으라고 청구했지만, 돈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며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공소’라고 하는데, 재판부가 심리 결과 유죄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면 ‘공소 기각’이 아닌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공소 기각’은 공소 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일 때 내려지는 결정으로, 실체적 판단을 한 ‘기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각 판결과 그 이후
기각 판결은 실질적인 패소를 의미합니다. 원고의 입장에서 기각 판결을 받았다면,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므로 불복하여 상급 법원에 항소나 상고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었다는 뉴스도 종종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신청했지만, 법원이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심리한 결과 이유 없다고 판단하여 받아들이지 않은 결정입니다.
인용 당신의 주장이 세상을 설득했을 때
‘인용’은 기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법원이 청구인의 주장이 타당하고 이유 있다고 판단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결정 또는 판결입니다. 즉, 원고의 승소를 의미합니다.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통해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인용 판결을 받으면, 원고는 자신이 청구한 내용대로 법적인 권리를 보장받고 의무를 이행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인용에는 ‘전부 인용’과 ‘일부 인용’이 있습니다. 전부 인용은 원고가 청구한 내용 전부를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을 갚으라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피고는 원고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면 전부 인용된 것입니다. 반면, ‘일부 인용’은 청구한 내용 중 일부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1억 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여러 증거와 주장을 검토한 후 “피고는 원고에게 7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면, 이는 일부만 승소한 일부 인용에 해당합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서도 인용이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국회가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여 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청구했을 때, 헌법재판소가 그 청구가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피청구인을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탄핵 심판 청구를 인용한 사례입니다.
한눈에 비교하는 법률 용어
각하, 기각, 인용의 핵심적인 차이점을 표로 정리하면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재판의 어떤 단계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가 세 용어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 구분 | 각하 | 기각 | 인용 |
|---|---|---|---|
| 심리 대상 | 소송의 형식적 요건 (절차) | 소송의 실질적 내용 (본안) | 소송의 실질적 내용 (본안) |
| 판단의 의미 | 소송 자체가 부적법함 | 청구인의 주장에 이유 없음 | 청구인의 주장에 이유 있음 |
| 결과 | 내용 판단 없이 재판 종료 | 원고(청구인)의 실질적 패소 | 원고(청구인)의 실질적 승소 |
| 누구에게 유리한가 | 피고(피청구인)에게 유리 | 피고(피청구인)에게 유리 | 원고(청구인)에게 유리 |
소송 준비부터 판결까지 알아야 할 필수 개념
기각, 인용, 각하 외에도 소송 절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법률 상식이 있습니다. 이 개념들을 함께 알아두면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판결과 결정의 미묘한 차이
‘판결’과 ‘결정’은 모두 법원의 판단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판결은 민사나 형사 소송의 본안 심리를 마친 후 내리는 최종적인 결론입니다. 반면 결정은 소송 절차 진행 중에 부수적인 사항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나, 가처분 신청, 구속영장 발부 여부와 같이 독립된 신청 사건에 대한 판단을 의미합니다. 보통 판결은 구두 변론을 거쳐야 하지만, 결정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알아두면 유용한 소송 당사자 용어
소송의 종류에 따라 당사자를 부르는 명칭이 달라집니다. 민사소송에서는 소송을 제기한 사람을 ‘원고’, 소송을 당한 사람을 ‘피고’라고 부릅니다. 형사소송에서는 검사가 기소한 범죄 혐의자를 ‘피고인’이라고 칭합니다. 행정소송이나 헌법재판소의 심판에서는 권리 구제를 청구하는 쪽을 ‘청구인’, 그 상대방을 ‘피청구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에 불복하는 방법 항소와 상고
1심 법원의 판결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상급 법원에 다시 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항소’라고 합니다. 항소심(2심)의 판결에도 불복할 경우, 대법원에 최종 판단을 구하는 것을 ‘상고’라고 합니다. 이처럼 판결에 불복하여 상급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는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 장치입니다.